독자 여러분, 혹시 본인의 죽음을 진지하게 고민해 보신 적이 있나요? 대부분의 사람은 죽지 않을 존재인 것처럼 정신없이 하루하루를 살다가 느닷없이 죽음과 직면하는 것 같습니다. 심지어 오래 살고 싶어 하면서도 건강 검진을 받지 않는 사람도 부지기수입니다. MBTI가 극단적 J(계획형)인 사람도 죽음을 미리 준비하지는 않겠죠. ‘나의 식습관, 생활 방식, 유전적 특질, 스트레스 강도 등을 고려했을 때 내가 20XX년 1월 23일에 세상을 떠날 가능성이 크니 죽는 날까지 매일 어떻게 살아야 할지 촘촘히 설계해 보자.’라고 생각하기는 어려울 겁니다. 어쩌면 우리는 죽음을 유통기한이 몇 년이나 지난 냉동실의 음식 쓰레기와 비슷한 것이라고 여기는 건 아닐까요? 눈에 띄지만 않으면 괜찮다고 생각하면서 까맣게 잊고 살다가 일단 그 실체와 마주하면 우리는 놀라 자빠지고 어떻게든 처리해야 하니까요.
그런데 만약 내가 죽더라도 온전한 상태로 3D 프린터의 출력물처럼 다시 출력될 수 있다면 죽음을 두려워할 이유가 사라질까요?
영화 <미키 17>은 이런 일이 가능한 미래 사회를 배경으로 합니다. 이 영화는 ‘휴먼 프린팅(human printing)’이라는 개념을 중심으로 복제인간의 이야기를 다룹니다. 휴먼 프린팅은 유기물로 사람을 출력하는 개념으로, 사무실에서 서류를 출력하는 것과 유사합니다. 이는 기존의 복제인간 SF 영화들과는 다른 접근 방식입니다.
배우 로버트 패틴슨이 연기한 주인공 ‘미키’는 마카롱 사업 실패로 거액의 빚을 집니다. 사채업자가 미키를 죽이겠다고 협박하는 지경에 이르자 미키는 사채업자를 피해 지구를 떠납니다. 별다른 재주가 없는 미키는 정치인 ‘마셜(마크 러팔로)’의 얼음행성 개척단에 합류해 매우 위험한 일을 하다가 죽으면 다시 출력되는 ‘익스펜더블(expendable, 소모품)’이 됩니다. 죽고 출력되기를 반복하며 미키 17에 이르기까지 미키의 고된 삶이 이어집니다. 그러다 미키 17이 죽지 않은 상황에서 미키 18이 출력됩니다. 그런데 둘은 동시에 존재할 수 없기 때문에 둘 중 하나는 죽어야만 합니다. 이때부터 본격적으로 이야기가 흥미진진해지죠.
SF영화의 미덕 중 하나는 불가능을 상상하는 것입니다. 생명공학을 비롯한 온갖 기술들이 아무리 발전한다고 해도 <미키 17>에서처럼 사람의 신체가 3D 프린터 출력물처럼 출력될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동일한 특징과 기억을 가진 기계적 휴머노이드는 사용자가 돈만 지불한다면 계속 다시 만들어질 수 있겠죠. 요즘 ChatGPT 등 생성형 AI 서비스와 사랑에 빠지는 사람도 많다고 하니 앞으로 휴머노이드와 평생을 함께하고 싶은 사람도 분명 많이 늘어날 겁니다.
자신이 엄청 아끼는 휴머노이드가 불의의 교통사고를 당해 몸체가 수리하기 어려울 정도로 파손된 상황을 상상해 보시죠. 다행히 휴머노이드의 머리 부분은 멀쩡해서 두뇌 역할을 담당하는 칩을 새로운 몸체에 끼우기만 하면 나와 같이 살았던 휴머노이드를 되살릴 수 있습니다. 아니죠. 만약 휴머노이드의 모든 데이터가 클라우드와 실시간으로 동기화되고 있었다면, 칩이 망가져도 나만의 휴머노이드를 금방 다시 배송받을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많은 사람들이 “얼른 내 돈을 가져가고 내 휴머노이드를 내놔!”라고 제조사에 말하지 않을까요?
사실 지금 휴머노이드는 사람의 생활 동반자 역할을 하기보다는 주로 공장이나 물류 창고 등에서 산업적 용도로 더 많이 쓰이고 있습니다. 영화 <미키 17>의 얼음행성처럼 사람이 접근하기 어려운 환경에서 휴머노이드가 큰 공을 세울 수도 있을 듯합니다. 인간의 섬세한 손동작을 잘 따라 하는 휴머노이드는 넷플릭스 시리즈 <중증외상센터>의 백강혁(주지훈) 교수보다 수술 실력이 더 뛰어날지도 모르죠.
한국의 휴머노이드 기술력은 미국과 중국에 크게 뒤처져 있지만 한국의 뛰어난 제조 역량과 우수한 인적 자원을 잘 활용한다면 격차를 조금씩 줄일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합니다. 한국은 이미 지난 2024년 12월에 65세 이상 고령인구가 총인구에서 차지하는 비율이 20% 이상인 ‘초고령사회’에 진입했습니다. 최근 출생률이 소폭 반등했지만, 여전히 전 세계에서 가장 낮은 수준입니다. 한국의 생산가능인구, 즉 경제활동이 가능한 만 15세부터 64세까지의 인구는 무서운 속도로 급감할 것입니다. 한국이야말로 앞으로 AI와 휴머노이드를 사회의 모든 분야에서 가장 적극적으로 활용해야 하는 국가 아닐까요?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끝)
글 | ES그룹 김태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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