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 여러분, ‘디지털 치매(digital dementia)’라는 말을 들어보셨나요? 디지털 치매는 디지털 기기에 과도하게 의존하는 바람에 치매와 유사한 인지력 저하를 겪는 현상을 뜻한다고 합니다. 저도 요즘 불과 몇 초 전의 일도 잊어버리는 경우가 있는 것 같아서 걱정입니다. (제가 방금… 뭐라고 썼다가 지웠죠…?) 사실 디지털 기기의 남용이 인지력을 해친다는 뚜렷한 과학적 증거는 찾기 힘들다고 합니다. 그렇다 하더라도 자주 사용되는 부분이 강화되고 그렇지 않은 부분은 약화되는 뇌의 작동 방식을 감안하면 디지털 기기가 뇌에 끼치는 영향이 없을 것 같지는 않습니다. 찜찜함이 마음 한편을 채움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오늘도 변함없이 침대에 누워 잠들 때까지 스마트폰을 손에서 놓지 못하겠죠?
대부분의 사람들이 옛날이었다면 종이에 기록하거나 어떻게든 스스로 기억하려 애썼을 정보를 지금은 스마트폰에 저장하고 있습니다. 스마트폰은 너무나 다양한 용도를 가진 기계이지만 우리 인생의 거의 모든 정보를 담고 있는 ‘외부 기억 장치’이기도 합니다. 스마트폰 속 모든 데이터를 모조리 수집해서 살펴본다면 우리는 해당 스마트폰 소유자의 인생을 거의 완벽하게 파악할 수 있을 겁니다. 수많은 사진과 동영상, 가족 관계, 하는 일, 취미, 좋아하는 음식, 자주 가는 카페, 애창곡, 가장 감명 깊게 본 영화, 혼자만 알고 있는 비밀까지 모두 스마트폰에 담겨 있습니다.
클라우드 서비스를 쓸 경우, 이러한 데이터는 네트워크를 타고 사용자의 스마트폰과 클라우드 사이를 쉴 새 없이 오갈 것입니다. 만약 어떤 이용자가 자신과 관련된 모든 파일을 클라우드에 즉시 100% 동기화한다면, 그 사람의 모든 데이터는 클라우드 데이터 센터가 파괴되지 않는 한 네트워크와 서버에서 영원히 존재할 수 있을지도 모르죠.
영화 <트랜센던스(Transcendence)>는 데이터를 클라우드에 업로드하는 것에서 더 나아가 인간의 뇌 전부를 클라우드에 업로드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지 보여줍니다. 영화의 줄거리는 이렇습니다. 인류가 수억 년에 걸쳐 이룬 지적능력을 초월하고 자각능력까지 가진 슈퍼 컴퓨터 ‘트랜센던스’의 완성을 목전에 둔 천재 과학자 ‘윌’(조니 뎁)은 “기술의 지나친 발전은 곧 인류의 멸망”이라고 주장하는 반(反) 과학단체 ‘RIFT’의 공격을 당해 목숨을 잃습니다. 윌의 연인 ‘에블린’(레베카 홀)은 윌의 뇌를 컴퓨터에 업로드시켜 그의 의식을 살리는 데 성공하지만, 초월적 힘을 얻은 윌은 온라인에 접속해 자신의 영역을 전 세계로 넓혀가기 시작합니다. 윌은 AI와 함께 스스로 진화하면서 신처럼 ‘편재하는(omnipresent)’ 존재로 거듭난 것이죠.
아직까지 영화 <트랜센던스>에서처럼 인간의 뇌를 100% 그대로 컴퓨터에 업로드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대신 이 영화의 또 다른 중요한 설정인 ‘인간을 뛰어넘는 인공지능’이나 인공지능과 결합하여 기존 인간을 뛰어넘는 능력을 가진 새로운 인류의 탄생은 가능할 수도 있겠습니다.
최근 샘 올트먼 OpenAI CEO가 4개월 여 만에 자신의 블로그에 AI의 미래에 대한 생각을 풀어 놓았습니다. 그는 “향후 수십 년 동안 우리는 우리 조부모 세대에게는 마법처럼 보일 일들을 할 수 있게 될 것”이라고 운을 뗐습니다. 그는 AI가 빠르게 발전하면서 인류가 새로운 능력을 갖게 되어 현재로서는 상상할 수 없는 수준의 번영을 누리게 될 것이라고 전망했습니다. 수천 일 안에 인류가 ‘초지능(superintelligence)’를 가지게 될 것이라고 예상하기도 했죠. 특히 AI 시스템이 더 나은 차세대 시스템을 만들고 과학적 진보를 이루는 데 도움이 될 정도로 발전할 것이라고 예측한 것이 인상적입니다. AI가 현재 부족한 점, 개선 사항, 오류 등을 스스로 파악할 수 있어야 차세대 시스템이나 과학적 진보에 대한 아이디어를 제공해 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샘 올트먼은 석기시대, 농업 혁명 시대, 산업 혁명 시대에 이어 인류가 ‘인텔리전스 시대(The Intelligence Age)’의 초입에 들어섰다고 단언했습니다. 지난 9월 12일 OpenAI가 공개한 새로운 추론 전문 모델 ‘o1-프리뷰(preview)’를 개발하면서 샘 올트먼은 AI의 퀀텀점프가 임박했다는 것을 직감했을까요? AI가 인간의 지능을 능가하는 ‘싱귤래러티(Singularity, 특이점)’가 정말 도래할지 궁금해집니다. 그 순간은 거짓말처럼 어느 날 갑자기 찾아올지도 모릅니다. 얼마 전 하루 만에 기온이 급강하하면서 불현듯 가을이 온 것처럼요.
(끝)
글 | 김태혁
'엑쓸신잡 > 영화로운 AI'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인공지능에서 인공감정으로? (영화 '와일드 로봇') (2) | 2024.10.31 |
---|---|
전지적 뇌 시점 사회 (영화 ‘써로게이트’) (5) | 2024.08.29 |
임박한 ‘1가구 1로봇 집사’ (0) | 2024.07.25 |
데이터로 영생하는 시대 (0) | 2024.06.27 |
좀비 차가 날 덮친다면? (0) | 2024.05.30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