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엑쓸신잡/영화로운 AI

모두가 멀티버스에 사는 시대 (‘존은 끔찍해’)

by starshines 2024. 12. 26.

 

 

독자 여러분, 혹시 하루에 몇 번 정도 선택의 순간과 마주하시나요? 실존주의 철학자인 장 폴 사르트르가 한 말이라고 널리 알려진 “인생은 B(Birth)와 D(Death) 사이의 C(Choice)”라는 격언이 익숙한 분도 계실 것 같습니다. 그야말로 인생은 선택과 선택과 선택의 연속입니다. 잠에서 깨어나 눈을 뜨면 5분만 더 잘지, 바로 일어날지 선택해야 합니다. 양치질부터 할지, 세수부터 할지 선택해야 합니다. 외출복을 고르다 보면 머리에 김이 날 지경입니다. 작고한 스티브 잡스, 페이스북 창업자 마크 저커버그 등 몇몇 CEO들은 옷을 고르는 데 소모되는 시간과 스트레스를 줄이고자 같은 옷을 수십 벌 구입하는 것으로 유명합니다. 그만큼 선택은 우리를 괴롭게 만드는 것이죠.

 

게다가 선택은 곧잘 후회를 남기고 후회는 우리가 미래를 향해 전진하지 못하게 발목을 붙잡기도 합니다. 과거의 잘못된 선택에 연연하지 말고 내일의 해를 맞이하자고 다짐해 보아도 과거의 늪에서 탈출하기는 매우 어렵습니다. 당장의 현실을 바꾸는 것은 지난한 반면 ‘만약 그때 내가 다른 길로 갔다면?’이라고 생각하며 모든 일이 내가 원하는 대로 진행되는 상상에 빠지는 것이 훨씬 더 쉽고 달콤하기 때문입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런 성향을 어느 정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멀티버스를 주제로 한 콘텐츠들이 대중적 인기를 얻는 것 같습니다.

 

넷플릭스의 ‘블랙 미러’ 시즌 6, 에피소드 1 <존은 끔찍해(Joan is awful)>도 멀티버스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아직 보지 못한 분들을 위해서 스포일러 없이 줄거리를 말씀드리겠습니다. 평범한 회사원인 주인공 존(Joan)은 약혼자와 함께 살고 있습니다. 어느 날 그녀는 글로벌 OTT 서비스에서 자신의 이름을 딴 '존은 끔찍해'라는 시리즈를 발견합니다. 충격적인 것은 이 시리즈가 존의 일상을 그대로 재현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극중 존은 현실의 존이 아니라, 세계적인 스타 셀마 헤이엑이긴 하지만 존의 모든 행동과 사적인 순간들이 전 세계에 실시간으로 방송되는 것입니다. 존의 삶을 구성하는 모든 순간이 공개되자 존은 혼란에 빠지고 위기를 겪습니다. 약혼자와 헤어지고 직장에서 해고됩니다. 거대 OTT 회사에 문제를 해결해 달라고 요청해 보지만 쉽지 않습니다. 존은 자신의 일상을 되찾기 위해 끝까지 고군분투합니다.

 

우리의 평범한 일상이 넷플릭스 시리즈가 되어 전 세계에 생중계된다면 어떤 기분이 들까요?

 

물론 실제로 <존은 끔찍해>에 나오는 것처럼 누군가의 삶을 실시간으로 재현해 OTT 시리즈로 만들기는 어려울 것입니다. 초고도화된 영상 및 음성 제작용 생성형 AI, 6G 이상의 통신 속도 등 제반 기술이 갖춰진다고 해도 개인정보 관련 규제 때문에 영화 속 이야기가 현실이 될 가능성은 낮을 것 같습니다. 그런데 만약 너무나 평범한 누군가가 자발적으로 자신의 삶을 OTT에 공개하겠다며 개인정보 제공에 동의해서 전 세계 최고의 미남, 미녀 배우가 그 사람의 삶을 살아가는 모습에 시청자들이 열광하고 개인정보 제공자도 큰 수익을 얻게 된다면 이후 많은 사람들이 뛰어들지 않을까요? 모두가 스크린 속 멀티버스에 사는 시대가 열릴지도 모릅니다.   

 

일반인보다 먼저 스타들이 도전하고 있습니다. 12월 24일 개봉한 영화 <나야, 문희>는 생성형 AI를 활용하여 제작된 한국 최초의 상업영화입니다. 실제 배우 나문희의 얼굴과 음성을 AI로 재현하여 5편의 에피소드를 만들었습니다. ‘AI 나문희’는 산타, 바이커(biker), 우주인, 총잡이 등 시공간과 장르의 경계를 넘나드는 다양한 캐릭터로 등장합니다.

 

실제 촬영 없이 생성형 AI로만 나문희 배우의 다양한 모습을 담아낸 영화 <나야, 문희>. 비록 17분 길이의 짧은 영화이지만 ‘나문희 멀티버스’를 보여줍니다.

 

생성형 AI 기술이 기존의 영화 제작 방식을 완전히 대체하기는 어렵다고 보는 시각이 여전히 우세합니다. 하지만 최근 OpenAI가 발표한 차세대 고급 추론 AI 모델 ‘o3’가 AGI(인공일반지능)에 도달한 첫 번째 모델이라는 평가도 나왔고, 앞으로도 생성형 AI 기술은 지속적으로 발전할 것 같습니다. 누구나 성능 좋은 컴퓨터만 있다면 정말 진짜 같은 영상과 음성을 제작하고 조작할 수 있는 시대가 코앞까지 다가온 듯합니다. 빛이 강하면 그림자가 짙어지는 것처럼, 기술 발전의 그늘에서 신음하는 사람들이 생기지 않도록 딥페이크 관련 규제를 강화할 때이기도 합니다.  

 

 

(끝)  

 

 

 

글 | IR/PR팀 김태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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