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그리고 당신을 위한 ‘초연결 시대의 현자 되기’ 프로젝트! 21세기 혼란스러운 초연결 사회에서 중심을 잡고 지혜롭게 살아가기 위한 내용들을 담아 돌아온 ‘필리노베이터’입니다.
지난달에 살펴본 ‘문화와 뇌의 공진화(共進化, coevolution)’ 중 ‘유전자와 환경’에 대한 내용에 이어, 오늘은 ‘호모 사피엔스, 그 성공의 비밀’이란 주제로 이야기를 나눠보겠습니다
호모 사피엔스의 사회적 학습
🔖 도서 '호모 사피엔스, 그 성공의 비밀' 中
"우리가 당신과 당신의 직장 동료 50명을 원숭이 50마리로 구성된 그룹과 함께 모두 중앙아프리카의 외딴 열대림에 떨어뜨릴 것이다. 그리고 2년 뒤에 돌아와 사람과 원숭이, 각 팀의 생존자를 세어볼 것이다. 생존자가 더 많은 팀이 이긴다. 장비를 가져가는 것은 허락되지 않는다. 성냥도, 물통도, 칼도, 신발도, 항생제도 안 된다. 의지할 것은 자신들의 기지와 팀원들뿐인 생소한 밀림 환경에서 2년 동안 살아남아야 한다. 당신이라면 어느 팀에 판돈을 걸 것인가?"
하버드대학의 인간 진화 생물학 조지프 헨릭(Joseph Henrich, 1968~) 교수가 쓴 『호모 사피엔스, 그 성공의 비밀』에 나오는 내용입니다. 여러분들이라면 어느 팀이 승리할 것이라 예상하시나요? 책에서는 원숭이 그룹의 승리를 점쳤습니다. 우리 인간은 사회적으로 학습 받지 못한 문제에 맞닥뜨릴 경우, 문제 해결 능력이 현저히 낮아지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20세기 들어 여러 오지를 탐사하다가 기후 같은 문제로 낙오되는 탐험가들이 많았습니다. 이들 중 대부분은 사망했습니다. 생존했던 소수의 경우는 현지인의 도움을 받았을 때였습니다.
이 책에 나오는 또 하나의 사례를 살펴보겠습니다.
🔖 도서 '호모 사피엔스, 그 성공의 비밀' 中
독일 라이프치히에 있는 진화인류학 연구소의 에스터 헤르만, 마이클 토마셀로와 동료들이 수행한 획기적 연구에서는 침팬지 106마리, 두 살 반의 유아들 105명, 오랑우탄 32마리가 38가지에 이르는 인지 검사를 받았다. 이 일련의 검사는 공간, 수량, 인과, 사회적 학습과 관련된 능력을 파악하는 하위 검사들로 나눌 수 있다. 공간 검사에는 피검자가 물건의 위치를 기억하는 과정을 통해 추적해야 하는 공간 기억 관련 능력을 검사한다. 수량 검사에서는 피검자가 상대적인 양을 가늠하거나 양의 증감을 알아차리는 능력을 측정한다. 인과 검사에서는 피검자가 문제를 해결하기에 적당한 속성을 가진 도구를 고르는 능력을 비롯해, 모양이나 소리 관련 단서를 써서 갖고 싶은 것의 위치를 찾아내는 능력을 판단한다.
사회적 학습 검사에서는 시연자가 알아내기 힘든 기법을 써서 갖고 싶은 물건을 얻는, 예컨대 좁은 관에서 먹을 것을 빼내는 모습을 관찰할 기회를 준 다음, 피검자에게 방금 본 것과 똑같은 과제를 주면서, 갖고 싶었던 물건을 얻는 데에 도움이 된다는 것이 방금 눈앞에서 입증된 기법을 쓸 수 있게 한다.
결과는 인상적이다. 아이들이 훨씬 더 큰 뇌를 지녔는데도, 사회적 학습 검사를 제외한 하위의 정신적 능력 검사 모두에서, 침팬지와 두 살 반 된 인간 사이에는 본질적으로 아무 차이도 없다. 침팬지보다 뇌가 약간 작은 오랑우탄은 성적이 조금 나쁘지만, 많이 나쁘지는 않다. 심지어 도구가 지닌 속성의 인과적 효력 판단에 특별히 초점을 맞춘 하위 검사에서는 갓난아기가 71퍼센트, 침팬지가 61퍼센트, 오랑우탄이 63퍼센트의 정답률을 얻기도 했다. 반면에 도구 사용에서는 침팬지가 갓난아기를 74퍼센트 대 23퍼센트로 압도했다. 이와 대조적으로, 사회적 학습 검사의 경우 그림 보이는 평균 성적에는 두 살 반 배기 대부분이 검사에서 100점을 받은 반면, 유인원은 대부분 0점을 받은 사실이 감춰져 있다.
공간, 수량, 인과, 사회적 학습과 관련된 능력을 파악하는 검사들로 구성된 이 대결의 결과는, 두 살 반 먹은 아이들은 훨씬 큰 뇌를 지녔음에도 침팬지와 본질적으로 아무 차이도 없다는 걸 보여줍니다. 100점 대 0점이라는 극단적 대조를 보인 ‘사회적 학습’ 검사를 빼면 말입니다. 심지어 침팬지와 오랑우탄은 다른 동물들에 비해 어느 정도의 사회적 학습 능력을 갖고 있습니다. 두 유인원에 비해 어린아이들이 유일하게 큰 우위를 보인 인지능력은 사회적 학습과 관계가 있으며, 공간이나 수량, 인과와는 관계가 없음을 시사합니다.
이 연구 결과는 인간의 학습 본능과 그를 통해 누적되는 지식들이, 인류와 문화를 개인의 지능보다 훨씬 더 특별하게 만드는 주인공이라 말하고 있습니다. 사회적 학습이 축적되며, 우리를 이토록 영리하게 만든 것입니다. 또한 그 과정에서 유용한 정보의 집합체인 문화를 더 효과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학습자가 살아남는 ‘자연선택’이 이루어졌습니다. 인간의 문화적 학습능력과 유전적 진화는 이처럼 긴밀히 상호작용하면서 인류의 현재를 형성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학습의 DNA, 공감과 거울 신경세포
독일의 젊은 뇌과학자인 프란카 파리아넨(Franca Parianen, 1989~)이 쓴 『나의 뇌는 나보다 잘났다』라는 책에서 인간의 뇌가 커진 이유는 사회성이라 주장합니다. 우리는 남의 기쁨을 자신의 것처럼 기뻐하고, 슬픔을 나눕니다. 누군가의 심정을 안다는 것, 즉 공감은 인간으로서 가장 원초적인 능력입니다.
하지만 공감이 어떻게 발생되는지를 알기 시작한 것은 얼마 되지 않았습니다. 내 곁에 있는 사람이 어떤 행동을 할 때, 나의 뇌 속에서도 특정 부위가 활성화되는 것을 실험을 통해 발견하고, 그것을 ‘거울 신경세포(Mirror neuron)’이라 이름 붙였습니다. 인간다움을 이야기할 때 반드시 등장하는 이론이기도 합니다. 우리가 아기를 보고 웃으면 아기도 따라 웃고, 공연장에 가서는 가수의 노래를 따라해야만 직성이 풀리며, BTS의 춤 동작은 순식간에 전 세계적으로 유행하는 것처럼 말입니다.
거울 신경세포는 이탈리아의 신경생리학자 자코모 리촐라티(Giacomo Rizzolatti, 1937~)가 1990년대에 처음으로 원숭이의 이마엽(전두엽, frontal lobe)에서 발견했습니다. 리촐라티는 원숭이가 땅콩을 손으로 집으려 할 때, 뇌의 이마엽 피질의 신경세포가 활성화됨을 발견합니다. 그런데 특이하게도 원숭이 자신은 가만히 있는데 누군가가 접시에 있는 땅콩을 손으로 집으려는 모습을 봤을 때도 이 세포가 활성화되는 것이 관찰됩니다. 마치 원숭이 자신이 직접 집을 때처럼 신경세포가 움직인 것입니다. 이처럼 신경이 거울처럼 반응한다고 해서 ‘거울 신경세포’라는 이름이 붙었습니다.
인간은 어떻게 서로를 공감하는가
『인간은 어떻게 서로를 공감하는가』의 저자인 크리스티안 케이서스(Christian Keysers, 1973~)는 거울 뉴런의 발견자 중 한 명인 비토리오 갈레세(Vittorio Gallese, 1959~)의 강연을 듣고, 거울 뉴런이 뇌과학의 오랜 숙제인 ‘공감’의 비밀을 풀 열쇠임을 직감했습니다. 2000년 박사과정을 마치자마자 저자는 파르마 대학 연구팀에 합류해 본격적으로 거울 뉴런 연구를 시작했고, 2004년 네덜란드 왕립학술원 신경과학 연구소에 독자적인 연구소를 개설하여 ‘공감’의 신경과학적 기초를 밝히는 일련의 중요한 연구들을 수행합니다.
파르마 연구팀은 원숭이에게 거울 뉴런 체계가 있다는 것을 발견했지만 사람에게도 있는지는 확인할 수 없었습니다. 이제까지의 실험은 원숭이의 뇌에 머리카락 굵기의 작은 전선을 삽입해 뉴런이 발화할 때 생기는 미세한 전기 자극을 감지하는 식이었습니다. 하지만 사람의 뇌에 전극을 삽입하는 것은 매우 위험했기에 fMRI(기능적 자기공명 영상) 뇌 스캐닝을 이용하여 연구합니다.
저자는 실험 참가자들에게 헤드폰을 씌우고 fMRI 스캐너에 눕힌 후 콜라 캔을 따서 컵에 따르는 소리, 종이 찢는 소리, 지퍼 여는 소리 등을 들려주었습니다. 실험 결과는 원숭이 실험 때와 일치했습니다. 손으로 직접 동작을 할 때 활성화되는 부위가 같은 동작의 소리를 들을 때에도 활성화되었습니다. 원숭이에게 청각 거울 체계가 존재한다는 것을 확인한 지 2년 만에, 저자는 fMRI 실험을 통해서 사람에게도 그와 유사한 거울 체계가 존재한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뇌 과학자인 빌라야누르 라마찬드란(Vilaynur S. Ramachandran, 1951~) 박사는 거울 뉴런을 두고 ‘DNA 이후 가장 중요한 발견’이라고 말할 정도입니다. 인류 진화에서 일어난 위대한 도약은 몇 가지 있습니다. 이족보행, 도구 사용, 언어지능의 획득 같은 것입니다. 거울 뉴런을 갖고 있는 것은 어쩌면 이보다 더 큰 도약의 기반일 수 있습니다. 인간은 집단 기억 정보뿐만 아니라 감정까지도 공유하는 가상의 데이터 플랫폼을 장착한 것입니다.
우리가 혼자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더불어 살아갈 수 있는 것도 거울 뉴런 덕분입니다. 다른 동물들처럼 단순히 생존을 위해 무리 짓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형태의 관계가 가능한 이유는 다른 사람의 감정을 자신의 것으로 느낄 수 있는 능력입니다.
인간이 사회를 구축해감에 따라 더 많은 충돌이 생겨나게 되었고 이를 조정하기 위해서는 서로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질 필요성이 생겨났습니다. 또한 상대방에 대해 이해한 정보를 집단적으로 교류하는 과정을 통해, 거대해진 사회 속에서 서로를 도울 수 있는 체계를 조성할 필요 또한 생겨났습니다. 수많은 타인들 간에 정보 교류가 원활하지 못하면 공동체의 기본 요건인 ‘상호 이타주의’가 성립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 도서 '인간무리, 왜 무리지어 사는가' 中
"어쩔 수 없이 함께 어울려 살아야 하는 타인 중에 짜증나고, 혐오스럽고, 불쾌하고, 무서운 정체성을 가진 사람이 있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그 모든 걱정스러운 사회적 조종(social navigation)과 고통스러운 언쟁에도 불구하고 진화적·역사적 맥락에서 보면, 우리가 이렇게 태평하게 뒤섞일 수 있게 된 것은 아주 대단한 일이다."
스미스소니언 협회 연구원인 마크 모펫은 집단을 이루어 살면서 상호작용을 통해 소속감을 느끼며 안도하는 속성을 '사회성'이라고 규정했습니다. 또한 사회는 사회성이라는 생명체의 자연스런 욕구가 낳은 결과라고 하였습니다. 이 사회성의 기저에 거울 신경세포가 작동하고 있습니다.
마치며
이번 시간에는 ‘호모 사피엔스, 그 성공의 비밀’라는 제목으로, ‘사회적 학습, 공감, 거울 뉴런’에 대해 알아보았습니다. 다음 시간에도 ‘문화와 뇌의 공진화’라는 주제 아래 다른 내용들을 이어서 다루겠습니다.
초연결 시대의 현자가 되는 그날까지, 필리노베이터는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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