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주, 어디까지 가봤니?"라고 묻게 될 미래
‘테크 인 시네마(Tech in Cinema)’가 소개할 여덟 번째 영화는 2008년 개봉한 픽사의 애니메이션 <월-E(WALL-E, 2008)>입니다. <월-E>는 꿈, 희망, 사랑을 전면에 내세우는 많은 애니메이션들과 다릅니다. <월-E>의 이야기는 인간의 과도한 개발과 소비로 인해 쓰레기로 뒤덮여 더 이상 사람이 살 수 없게 된 먼 미래의 지구에서 시작됩니다. 나노미터(nm, 10억 분의 1미터)만큼의 희망도 존재하지 않는 듯한 디스토피아가 관객을 심란하게 만들지만, 영화를 다 보고 나면 어느새 희망과 사랑의 새싹이 마음속에 자라기 시작했음을 느낄 수 있는 신비한 영화입니다. 미래의 사람이 상실한 인간성을 대신 증명하는 귀여운 로봇들의 모습은 가뭄으로 쩍쩍 갈라진 지표면에 쏟아지는 반가운 빗줄기처럼 관객의 마음을 적십니다.
이번 '테크 인 시네마'에서는 영화 <월-E>의 주요 내용과 이 영화의 핵심 테마인 '우주여행' 기술의 현재와 전망을 간략히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 사진 1 : 스스로 태양광 충전 중인 월-E의 모습. 월-E는 수리도 자신이 직접 합니다.
'월-E(WALL-E)'는 'Waste Allocation Load Lifter Earth-Class'의 줄임말로 '지구 쓰레기 처리 로봇'입니다. 인간들이 황폐화된 지구를 떠난 이후 생명체를 찾기 힘들어진 지구에서 수백 년 동안 혼자 쓰레기 처리를 하며 외롭게 지내온 월-E. TV 속 사람들의 이야기에 관심을 가지고 음악을 들으며 쓰레기 더미에서 소장하고 싶은 물건을 찾아낼 뿐만 아니라 반려 바퀴벌레까지 보살필 만큼 감성이 풍부하고 인간적인 월-E는 자신과 너무나 다르지만 매력이 넘치는 탐사 로봇 ‘이브’를 만나 설렘을 느낍니다. 월-E와 이브가 서로를 조금씩 알아가던 중 지구에서 자신이 찾고자 한 것을 발견한 이브는 우주여행 중인 인간들에게 이 사실을 보고하기 위해 급히 다시 우주로 향하고, 월-E가 이브를 쫓아가게 되면서 둘이 함께 하는 기상천외한 우주 모험이 펼쳐집니다.
▲ 사진 2 : 이브를 따라가려고 엉겁결에 우주선에 올라탄 월-E의 겁먹은 표정이 귀엽습니다.
▲ 사진 3 : 이브(좌)와 월-E(우)가 서로 눈을 맞추고 교감하며 우주 공간을 유영하고 있습니다. 배경에는 우주선 '엑시엄'이 보입니다.
영화 <월-E>에 등장하는 인간들은 초대형 우주선 '엑시엄'을 타고 굉장히 오랜 세월 동안 우주여행을 계속합니다. 이들은 정말 원해서 우주여행을 지속한다기보다 황폐화된 지구에서는 살 수 없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우주여행을 이어 갑니다. 이러한 상황은 지구 최대의 독점기업 'B&L(Buy & Large)'이 초래한 것으로 묘사됩니다. B&L은 인간이 소비하는 거의 모든 재화를 독점적으로 생산하고 판매하는 기업으로서 우주여행 상품 역시 B&L이 만들어 낸 것입니다. 우주선 '엑시엄' 안에서 인간들은 전동의자에 앉아 이동하고, 전동의자에 몸을 맡긴 채 생활에 필요한 모든 것을 해결합니다. 문명의 이기 덕분에 한껏 게을러진 인간의 몸은 오랜 시간을 거쳐 아기 체형으로 바뀌고 말았죠.
▲ 사진 4 : '이미 움직이지 않고 있지만 더 격렬하게 움직이지 않겠다'를 실천 중인 인간들을 바라보는 월-E
현재로서는 영화 <월-E>에서처럼 '엑시엄'과 같은 초대형 우주선을 타고 장시간 우주여행을 하는 것은 불가능하지만 과거 한갓 허풍으로 치부됐을 우주여행 상품이 이제 현실이 될 날이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아마존의 CEO 제프 베조스가 이끄는 '블루 오리진(Blue Origin)', 테슬라의 CEO이기도 한 엘론 머스크의 '스페이스 X(Space X)', 그리고 버진그룹의 회장 리처드 브랜슨이 설립한 '버진 갤럭틱(Virgin Galactic)'이 민간인 우주여행 시대를 선도하기 위해 각축전을 벌이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하 3개 우주여행 업체를 비교한 부분은 '출발 임박! 우주여행 업체 3곳 비교*' 글을 요약, 정리하여 작성했습니다.
▲ 사진 5 : 제프 베조스가 블루 오리진 우주선 앞에서 활짝 웃고 있습니다. 제프 베조스가 못하는 건 뭘까요?
먼저 제프 베조스의 '블루 오리진'부터 살펴볼까요? 블루 오리진은 우주 자원을 활용해 인류에게 도움을 주겠다는 비전을 갖고 있다고 합니다. 블루 오리진은 로켓을 재활용해 원가를 절감함으로써 우주여행 시대를 앞당기고 있습니다. 블루 오리진은 2017년 11월 탄도비행용 로켓 'New Shepard(뉴 셰퍼드)'를 지상 100km까지 쏘았다가 다시 착륙시키는 데 성공했죠.
블루 오리진은 아직 유인 비행을 시행한 적은 없습니다. 대신 실험용 마네킹이나 NASA 연구용 장비를 실은 New Shepard가 열한 차례 시험 비행을 했다고 합니다. 그중 첫 비행을 제외한 열 번의 비행에서 추진체가 재착륙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작년 7월 열 번째 시험 비행에서는 로켓 상부에 위치한 탑승용 캡슐을 높은 고도에서 분리해냈는데요. 추진체 폭발 등 비상 상황에서 탑승자들이 탈출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였다고 합니다. 일반 여행객을 우주로 데려가기 전, 블루 오리진은 자사 우주비행사를 대상으로 한 유인 비행을 완수할 계획입니다. 일반인 대상 첫 상품은 11분짜리 지상 100km 우주여행이 될 것이라고 하네요.
블루 오리진은 최근 아마존 전시회 re:MARS에서 탑승용 캡슐을 공개했는데요. 15 제곱미터 (약 4.5평) 크기의 이 공간은 여섯 명의 탑승자들이 우주 공간의 낮은 중력을 견디는 데 도움을 주는 푹신한 의자와 벽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 사진 6 : 블루 오리진 탑승용 캡슐 내부
블루 오리진은 지상 100km 우주여행뿐만 아니라, 궤도 비행용 로켓과 달 진출도 준비 중입니다. 2024년 달 비행 상품을 완성하고, 달의 자원을 활용할 수 있도록 도움을 줄 계획이라고 합니다.
▲ 사진 7 : 우주로 쏘아 올려진 테슬라의 빨간색 스포츠카 '로드스터(Roadster)'
운전석에 앉은 마네킹 '스타맨(Starman)'. 스타맨의 최종 목적지는 화성입니다.
스페이스 X는 블루 오리진보다 더 큰 꿈을 꾸고 있습니다. 스페이스 X의 우주 탐사는 인류를 여러 행성에 살게 하는 것이 목표입니다. 최종 목표는 2050년까지 화성에 8만 명 규모의 도시를 건립하는 것인데요. 그러기 위해 로켓 재활용 기술을 갈고닦아 우주여행 비용을 줄여나갈 계획이라고 합니다. 성공하면 인당 단돈(?) 2억 4천만 원에 화성으로 이주할 수 있게 된다고 하네요.
▲ 사진 8 : 스페이스 X 화성 도시 상상도
화성을 향한 무인 시험 발사는 2022년 시작합니다. 현재는 Falcon 9(팔콘 나인)과 Falcon Heavy(팔콘 헤비)를 이용한 유/무인 발사 서비스를 제공함으로써 NASA의 프로젝트에 동참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정부 프로젝트를 위한 발사를 여러 번 수행한 후 우주여행 등 민간인 대상 발사로 규모를 넓힐 것으로 추측됩니다. 그 예시로 일본 예술가 마에자와 유사쿠를 2023년 달에 보내겠다는 내용의 작년 9월 발표를 들 수 있습니다. 이 프로젝트는 대부호이기도 한 마에자와의 후원을 받아 진행하는데요. 사실상 달 여행 상품을 판매한 것이죠.
스페이스 X는 우주정거장 여행 상품도 계획 중이라고 합니다. 최근 NASA는 국제우주정거장(ISS)을 민간에 개방하겠다고 선언하며 협력 업체 중 하나로 스페이스 X를 선정했습니다. 이 상품을 구매하면 스페이스 X의 우주선 Crew Dragon(크루 드래곤)을 타고 가 우주정거장에서 1박당 4100만 원(!)에 최대 한 달까지 머물다 올 수 있습니다.
▲ 사진 9 : 버진 갤럭틱의 항공기 'WhiteKnightTwo'에 올라타 '엄지 척!'하고 있는 리처드 브랜슨
버진 갤럭틱은 우주와 지구를 연결해 고객에게 새로운 기회와 경험을 제공하겠다는 비전을 내세웠습니다. 우주에서 직접 무언가를 하는 것보다, 우주에서 다양한 연구와 사업을 하고자 하는 과학자나 기업가를 도와주는 것에 초점을 맞췄다고 하네요. 이 기업은 세계 최초 상업용 정기 우주 노선 자리를 노리고 있습니다.
버진 갤럭틱의 우주선 SpaceShipTwo(스페이스십투)는 작년 12월과 올 2월 두 차례의 시험 비행을 마쳤습니다. 두 번 모두 두 명의 조종사가 탑승했고, 첫 번째 비행에서는 약 80km, 두 번째엔 90km 높이까지 올라갔습니다. 그러나 아쉽게도 통상 '우주'라고 부르는 공간이 시작되는 지상 100km까지는 올라가지 못했습니다. 대기 밀도가 급격히 줄어드는 곳이자, '카르만 선(Karman Line)'이라고도 부르는 지점입니다. 이 지점을 전후해 지구의 아름다운 테두리 일부를 볼 수 있습니다. 짧은 무중력 상태도 느낄 수 있다고 합니다.
▲ 사진 10 : 버진 갤럭틱 SpaceShipTwo
버진 갤럭틱은 일반인이 카르만 선을 통과해 여행할 수 있도록 하는 상품도 출시할 계획입니다. 이미 약 700명의 고객이 티켓을 예매했다고 합니다. 90분의 우주여행에 1인당 약 3억 원이 필요한데, 이렇게 신청자가 몰리는 걸 보면 세상에는 참 부자가 많은 것 같습니다.
엘론 머스크의 구상대로 우주여행이 가능할 뿐만 아니라 인간이 화성에서 살 수 있는 시대가 정말 올까요? 화성 거주는 잘 모르겠지만 조만간 이런 대화는 심심찮게 들어볼 수 있을 듯합니다.
"우주, 어디까지 가봤니?"
"난 카르만 선까지 가봤지. 너는?"
"난 달의 뒷면까지 보고 왔어."
"그래, 너 잘났다. 난 화성도 가볼 거야."
"편도인데?"
"..."
* 출처 : 출발 임박! 우주여행 업체 3곳 비교
기획 및 글 | 사업기획팀 김태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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