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체가 없는 대상을 사랑할 수 있을까요?
‘테크 인 시네마(Tech in Cinema)’가 소개할 아홉 번째 영화는 스파이크 존즈 감독의 미래형 멜로 영화 <그녀(Her, 2013)>입니다.
'테크 인 시네마 - 미래도시 어둠 속을 달리는 인간과 복제인간' 편에서 다룬 영화 <블레이드 러너>는 인간이 복제인간과 사랑에 빠질 수도 있겠다는 상상을 하게 만들었습니다. 기발한 이야기와 아름다운 대사들로 2014년 아카데미와 골든글로브 각본상을 석권한 영화 <그녀>는 영화 <블레이드 러너>가 던진 사랑에 관한 질문보다 답하기 어려운 고민거리를 안겨줍니다. <블레이드 러너>에 등장하는 복제인간은 인간과 거의 완전히 똑같은 육체를 가지고 있지만, 영화 <그녀>에 등장하는 인공지능 운영체제(OS)는 육체가 없습니다. 우리는 과연 육체가 없어서 정신적 교감만 가능한 무형의 대상을 사랑할 수 있을까요? 만일 그것이 가능하다면, 사랑과 관계의 본질은 무엇일까요? 우리는 어떻게 사랑하는 대상을 '감각'해야 할까요?
이번 '테크 인 시네마'에서는 영화 <그녀>의 주요 내용, 그리고 이 영화에 등장하는 음성인식 기술과 감정인식 인공지능(Emotion AI)을 간략히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사진 1 : 인공지능 운영체제가 컴퓨터에 설치되는 동안 테오도르(호아킨 피닉스)가 멍때리고 있습니다.
영화 <그녀>의 시놉시스는 아래와 같습니다.
다른 사람의 편지를 써주는 대필 작가로 일하고 있는 ‘테오도르(호아킨 피닉스)’는 타인의 마음을 전해주는 일을 하고 있지만 정작 자신은 아내 캐서린(루니 마라)과 별거 중인 채 외롭고 공허한 삶을 살아가고 있다.
어느 날, 스스로 생각하고 느끼는 인공지능 운영체제 ‘사만다(스칼렛 요한슨)’를 만나게 되고, 자신의 말에 귀를 기울이며 이해해주는 ‘사만다’로 인해 조금씩 상처를 회복하고 행복을 되찾기 시작한 ‘테오도르’는 어느새 점점 그녀에게 사랑의 감정을 느끼게 되는데...
참고 : 네이버 영화 <그녀> 주요 정보
이 영화를 보지 않으신 분이라면, 아무리 기술이 발전하더라도 형체가 없이 말만 하는 인공지능 운영체제와 사랑에 빠지는 건 절대 불가능하다고 생각하실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인공지능 운영체제 '사만다' 역할을 맡아 목소리만으로 열연한 스칼렛 요한슨, 마천루가 즐비한 첨단 미래 도시에 사는 인간이 느낄법한 공허함과 외로움을 얼굴 주름 단위로 정밀하게 표현한 호아킨 피닉스의 명연기 덕분에 대부분의 관객은 영화 <그녀>에 몰입할 수 있었습니다.
▲사진 2 : 인공지능 운영체제 '사만다'는 스스로의 판단에 따라 필요하다고 생각하면 테오도르에게 먼저 말을 걸기도 합니다.
굉장히 능동적이고 적극적인 인공지능입니다.
영화 <그녀>에 등장하는 인공지능 운영체제는 '완벽한' 개인 맞춤형 인공지능이라고 보시면 될 것 같습니다. 단순한 인공지능이 아니라 정말 하나의 인격체처럼 느껴지는 사만다는 사람의 희로애락을 느끼고 그에 반응하며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는 능력도 지니고 있습니다. 초고도화된 감정인식 인공지능(Emotion AI)이라고 할 수 있죠. 테오도르의 미세한 목소리 변화를 감지해 테오도르의 심정을 파악할 만큼 사만다의 직감과 눈치는 웬만한 사람보다 낫습니다. 사용자의 음성 등 소리뿐만 아니라 카메라를 통해 시각 정보도 획득하는 사만다의 능력은 경험을 쌓으면 쌓을수록 커집니다. 사만다는 학습을 통해 매 순간 진화하면서 테오로드를 더 잘 알게 되고, 그에게 더욱더 딱 맞는 '연인'이 되어 갑니다. 테오도르와 사만다가 나누는 정신적 교감은 여느 사람 간의 교감보다 깊은 것으로 묘사되기 때문에 테오도르가 "넌 내게 진짜야, 사만다"라고 말하는 장면이 충분히 납득됩니다. 테오도르가 만질 수 없고 목소리만 들을 수 있는 사만다에게 느끼는 사랑도 진짜라고 생각되는 것이죠.
▲사진 3 : 자신을 온전히 이해해주는 사만다와 함께하는 순간, 테오도르는 군중 속의 고독을 느낄 틈 없이 즐겁기만 합니다.
영화 <그녀>에 등장하는 음성인식과 감정인식 인공지능 기술의 수준은 현재보다 월등히 뛰어납니다. 지금 판매되고 있는 인공지능 스피커는 사만다처럼 사람의 미묘한 감정 변화를 포착해내지는 못하죠. 실제 기분은 우울하지 않더라도 인공지능 스피커에 대고 "OO야, 나 우울해."라고 말한다면 인공지능 스피커는 "살.다.보.면.그.런.날.도.있.는.것.같.아.요.힘.내.세.요."라고 어색한 스타카토 스타일로 대답할 겁니다. 사실 지금의 인공지능 스피커는 명령을 잘 알아듣기만 해도 다행이고, 질문에 엉뚱한 대답만 안 해도 감사할 따름이죠.
하지만 앞으로 인공지능이 오랜 시간 수많은 데이터를 학습해 나가다 보면 언젠가 사만다처럼 사용자보다 사용자를 더 잘 아는, 육체 없는 '인공지능 연인'이 정말 등장할 수도 있지 않을까요? 인기 연예인들의 목소리를 탑재한 '인공지능 연인'이 불티나게 팔릴지도 모르겠습니다.
▲사진 4 : 누구와 함께 하든, 혼자이든 인간은 문득 외로움을 느낍니다. 초개인화된 인공지능이 인간의 외로움과 고독을 덜어줄 수 있을까요?
기획 및 글 | 사업기획팀 김태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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