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두려워요, 데이브"
‘테크 인 시네마(Tech in Cinema)’가 소개할 다섯 번째 영화는 스탠리 큐브릭 감독의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2001 : A Space Odyssey, 1968)>입니다.
이번 리뷰의 제목인 "난 두려워요, 데이브"는 이 영화에 등장하는 인공지능 'HAL(할) 9000'의 대사입니다(사실 영화 속에서는 '인공지능'이 아니라 '기계지능(machine intelligence)'으로 불립니다.) 저도 'HAL 9000'처럼 두렵습니다.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는 형언하기 힘들 만큼 거의 모든 요소가 걸작이어서 어떻게 리뷰를 써야 할지 모르겠거든요.
#1. 우주 배경 SF영화의 진정한 기원
저의 글을 읽고 계시는 지금 이 순간 전 세계 곳곳에서 수많은 영화가 촬영, 편집, 상영 중입니다. 정지된 사진이 움직이는 영상으로 바뀐 마법의 순간 이래로, 지금까지 만들어진 모든 영화의 제목을 일일이 말하는 데 걸리는 시간은 화성에 가는 시간보다 오래 걸릴지도 모릅니다. 단 하나의 영화가 어떤 장르를 대표한다고 단언하기는 참 어렵습니다. 그런데 '우주를 배경으로 한 SF영화'로 좀 더 범위를 좁힌다면, 망설임 없이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가 대표작이라고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사실 "우주를 배경으로 한"이라는 수식어를 빼도 괜찮습니다. SF영화의 역사는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 이전과 이후로 나뉜다고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긴 여정'을 뜻하는 '오디세이(odyssey)'가 제목에 포함된 만큼 이 영화의 시간적 배경은 수백만 년을 아우릅니다. 영화의 테마곡 중 하나인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의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를 배경으로, 장엄한 일출이 진행되고 나면 인류의 조상으로 보이는 유인원 무리가 등장합니다. 이들은 제대로 힘 한번 써보지 못하고 맹수에게 잡아 먹힐 정도로 연약해서 늘 공포에 떨어야 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정체불명의 검은 돌기둥(monolith)이 나타난 이후로 인간은 동물 뼈를 도구로 사용하는 방법을 터득합니다. 도구를 활용하자 모든 것이 달라집니다. 동물을 때려잡아서 먹고, 무리를 위협하는 적의 우두머리를 가격해 죽입니다. 도구를 쓸 줄 모르는 적은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죠. 인류의 진화가 도구의 발명 없이는 불가능했음을 암시합니다.
적을 무찌른 유인원은 포효하며 하늘 높이 뼈다귀를 던집니다. 뼈다귀는 일순간 우주 공간을 유영하는 우주선으로 바뀝니다. 요한 슈트라우스 2세의 왈츠곡 '푸른 도나우 강(The Blue Danube)'이 흐르고 각양각색의 우주선들은 마치 왈츠를 추듯이 우주 공간을 누빕니다. 인간이 도구 덕분에 자신의 육체적, 물리적 한계를 뛰어넘어 우주를 탐험할 수 있는 존재로 진화한 것이죠. 수백만 년에 이르는 인간 진화의 역사를 단 하나의 장면 전환을 통해 보여준 이 씬은 영화사에서 손꼽히는 멋진 편집입니다.
▲ 사진 위, 아래 : 공중에 던져진 뼈다귀가 길쭉한 우주선으로 바뀌는 장면
SF영화는 장르 특성상 인간 기술의 현재와 미래를 탁월하게 시각화합니다.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는 SF영화의 비주얼을 혁신한 선구자입니다. 이 영화가 제작된 1968년에는 오늘날 영화계를 휩쓸고 있는 CG(컴퓨터 그래픽)가 없었습니다. CG 없이 오직 정교하게 제작된 세트, 특수효과, 시각효과만으로 지금 보아도 촌스럽지 않은 비주얼을 구현해 냈다는 사실은 정말 놀랍습니다. 이 영화에는 디지털이 전혀 개입하지 않았습니다. 순도 100% 아날로그인 것이죠. 반면에 요즘 디지털 기술 없이 만들어지는 영화를 찾는 것은 마블 영화를 한 편도 보지 않은 관객을 찾는 것만큼 어렵습니다.
▲ 사진 : 원형 우주선 세트에서 촬영 중인 스탠리 큐브릭 감독과 제작진
▲ 사진 : 원형 우주선 안에서 조깅하는 우주인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는 닐 암스트롱이 달에 첫 발을 내딛기 전에 제작됐습니다. 당시까지 과학자들이 밝혀낸 우주에 대한 지식에 기반해 상상력을 최대한으로 발휘해 만든 작품입니다. 실제로 나사(NASA, 미국항공우주국) 연구원과 여러 과학자들이 제작에 참여했다고 합니다. 태양, 지구, 달은 물론 목성, 토성 등 태양계의 천체들이 아름답고 경이로운 모습으로 등장합니다. 특히 당시에는 미지의 영역이었던 토성 바깥의 우주 공간은 '무한 그 너머(beyond the infinite)'로서 황홀한 풍경을 가진 곳으로 묘사됩니다.
▲ 사진 : 목성 탐사선 '디스커버리 1호'가 토성으로 진입하는 장면.
슬릿 스캔 방식(slit scan VFX system)으로 촬영된 이 장면은 현란한 빛, 파동, 음향으로 구성됩니다.
당시 영화 제작에 가용할 수 있는 모든 기술을 집대성해 완벽과 새로움을 추구한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는 이후 수많은 SF영화에 영감을 불어넣었습니다. 영화 <그래비티>와 <인터스텔라>도 이 영화의 영향을 받은 작품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2. 인공지능의 시조 'HAL 9000'
이 영화는 당시에 존재하지 않았던 다양한 미래기술을 선보입니다. 음성 신분 확인, 우주와 지구 간 화상전화, 우주 간편식, 무중력 화장실, 장기간의 우주여행을 위한 동면 등 지금은 낯설지 않은 흥미로운 첨단기술을 매우 세련된 방식으로 표현했습니다. 그중에서 단연 돋보이는 것은 인공지능의 시조라고 할 수 있는 'HAL 9000'입니다.
▲ 사진 : 자신이 통제하는 우주선에 탑승한 우주 비행사를 쉴 새 없이 관찰하는 'HAL 9000'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는 '인터넷'이라는 개념이 처음 등장한 1960년대 후반에 제작됐습니다. 그때 인터넷은 지금의 인터넷과 달리 군사용 네트워크의 하나였습니다. 또한 1960년대는 컴퓨터 기반 인공지능 연구가 싹을 틔웠던 시기인데요. 이 영화에 등장하는 인공지능 'HAL 9000'은 당시 걸음마 수준의 인공지능을 훨씬 뛰어넘는 것으로서 지금도 도달하지 못한 '강인공지능(Strong AI)'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HAL 9000'은 목성 탐사선 디스커버리 1호의 모든 것을 통제합니다. 이전까지 완벽한 작동 기록을 가진 'HAL 9000'은 사람보다 체스를 더 잘 두고, 감정을 가지고 있습니다. 'HAL 9000'은 우주비행사를 의심하기도 하고, 우주선 결함의 원인을 놓고 그들과 논쟁을 벌이기도 합니다. 'HAL 9000'은 자신은 절대 문제가 없으며 사람의 잘못(휴먼 에러) 때문에 결함이 발생했다고 주장합니다. 심지어 자신의 죽음을 인지하고, 죽음에 대한 공포도 느낍니다.
이런 'HAL 9000'의 모습을 보면 '강인공지능'에 대한 두려움이 생깁니다. 인공지능과 로봇이 인간을 대체하는 것을 넘어서 영화 <터미네이터>나 <매트릭스>에서처럼 인간을 해치는 순간이 오면 어쩌지, 하는 걱정이 들기도 합니다. 실제로 스티븐 호킹, 엘론 머스크, 빌 게이츠 등 많은 학자와 첨단 테크 기업 CEO들이 인공지능의 위험성을 경고하기도 했습니다. 정말 'HAL 9000'과 같은 '강인공지능'이 인간에 도전하는 일이 발생할까요?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50여 년 전, 인간의 기원과 우주 탐험의 비전을 제시한 영화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가 우리에게 던진 질문을 이제 흘려듣기 어렵게 됐습니다. 인공지능을 인간의 좋은 친구로 만들기 위해 필요한 법과 윤리를 확립하려면 전 세계가 지혜를 모아야 할 것 같습니다.
기획 및 글 | 사업기획팀 김태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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