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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ech in Cinema | 블레이드 러너

정보/Tech in Cinema 2019.06.07 13:45




미래도시 어둠 속을 달리는 인간과 복제인간

 

‘테크 인 시네마(Tech in Cinema)’가 소개할 여섯 번째 영화는 리들리 스콧 감독의 <블레이드 러너(Blade Runner, 1982)>입니다. 

지난달 '테크 인 시네마'에서 다룬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에 등장한 인공지능 'HAL(할) 9000'은 놀라운 지능과 감정을 가졌지만 외형은 기계였습니다. '인간'으로 생각하기엔 뭔가 부족했죠. <블레이드 러너>에는 로봇의 수준을 뛰어넘어 외모와 신체마저 인간을 빼닮은 복제인간, 'Replicant'가 등장합니다. Replicant는 인간과 흡사한 신체 구조를 가진 로봇, 즉 휴머노이드(humanoid)의 최정점이라고 보시면 될 것 같습니다.

 

▲ 사진 : 왼쪽은 인간 '릭 데커드(해리슨 포드)', 오른쪽은 Replicant '레이첼(숀 영)'

 

 

 

#1. 필름 누아르(film noir)의 멋을 두른 SF 걸작 

영화 <블레이드 러너>의 공간적 배경은 암울한 미래도시입니다. 공교롭게도 1982년 처음 개봉한 이 영화에 등장하는 미래도시는 바로 2019년의 LA입니다. 영화 제작 당시를 기준으로 잡으면 거의 40년 후가 2019년이니 이해할만합니다. 어쩐 일인지 <블레이드 러너>가 묘사하는 2019년 LA 도심에는 일본어 간판이 즐비합니다(잘 찾아보면 한글 간판이 나오는 장면도 있긴 있습니다). 가부키 화장을 한 여성의 얼굴이 초대형 광고판을 채우고, 길거리 포장마차에서는 일본인 주인이 일본말을 하며 정신없이 일본 음식을 팝니다. 중국이 G2로 부상한 현시점에서 보면 일본 문화가 LA를 지배하는 상황은 다소 부정확하다는 생각도 듭니다. 아마 이러한 설정은 이 영화가 제작되었던 1980년대 초, 미국을 추월할 것만 같았던 당시 일본의 막강한 경제력과 영향력을 고려한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저의 뇌피셜입니다).

 

▲ 사진 : 영화 <블레이드 러너>에 등장하는 2019년 LA. 초고층, 초대형 건물이 빽빽이 들어서 있습니다.

주인공 릭 데커드의 집은 무려 97층입니다. 오른쪽 대형 광고판에서는 가부키 화장을 한 여성이 대중의 소비를 부추기고 있습니다.

 

이 영화에서 대부분의 사건은 주로 밤에 일어납니다. 밤에 추적추적 내리는 비는 음습함을 배가시킵니다. 인간에게 반란을 일으킨 복제인간 'Replicant'를 추적하는 릭 데커드(해리슨 포드)는 탐정소설의 탐정처럼 혼자 외롭게 임무를 수행합니다. 탐정소설에 영향을 받았고 밤의 정서가 지배하는 장르인 '필름 누아르(film noir)'를 연상시키는 설정입니다. <블레이드 러너>는 필름 누아르의 멋을 두른 SF인 것이죠. 게다가 추격 스릴러의 재미도 갖추고 있습니다. 다양한 장르가 적절히 혼합된 완성도 높은 작품이라고 생각합니다.

 

 

<블레이드 러너>가 2019년쯤이면 존재할 것이라고 상상한 첨단 미래기술 중 현재 실현된 것도 있고, 그렇지 않은 것도 있습니다. 화상전화는 우리 일상 속에 자리 잡은 지 오래되었고, 음성인식을 활용한 본인 확인 기술도 사용됩니다. 하지만 세계 최고의 부호들도 수직 이착륙 비행 자동차를 타고 꽉 막힌 고속도로 위를 날아다닐 수는 없습니다. 또한 현실의 2019년에는 복제인간이 존재하지 않습니다. 복제인간 대신 이 영화가 상상하지 못했던 스마트폰이 등장해 인간의 삶을 크게 바꾸어 놓았습니다. 

4차 산업혁명 시대의 우리는 기술 발전과 변화의 속도가 따라잡을 수 없을 만큼 빠르다고 생각하지만, 수많은 SF영화에 등장하는 미래와 실제 그 시점의 현실을 비교해 보면 발전 속도가 영화에서만큼 빠르지 않은 분야도 많습니다. 지난달 소개해드렸던 스탠리 큐브릭 감독의 영화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의 우주 기술도 실제 현실 속 2001년의 수준을 능가하는 것이었죠.

 

▲ 사진 : <블레이드 러너>에 등장하는 수직 이착륙 비행 자동차. 갖고 싶습니다.

 

 

 

#2. 복제인간과 사랑을?

<블레이드 러너>에 등장하는 복제인간은 'Replicant'라고 불립니다. 'Replicant'는 '복제하다'라는 뜻의 영단어 'replicate'와 사람을 의미하는 접미사 '-ant'를 결합한 합성어로 추측됩니다. 이 영화의 설정에 따르면, 전투를 비롯해 다양한 활동을 할 수 있는 Replicant가 기능별로 존재합니다. Replicant는 미움, 사랑, 공포, 분노, 시기 등 감정적 반응도 표현합니다. Replicant를 개발한 타이렐 사의 회장은 "More human than human"이 회사 모토라고 말합니다. 그는 최신의 NEXUS 6 Replicant에게 기억을 만들어 줌으로써 감정 능력을 향상하고자 하죠. 인간의 정체성을 구성하는 핵심 요소가 바로 '기억'이니까요.

 

 

그렇다면 <블레이드 러너>에 등장하는 Replicant처럼 감정을 가지고 인간과 교감할 수 있는 휴머노이드가 현실에도 존재할까요? 최근 몇 년 새 가장 유명세를 탔던 휴머노이드는 '소피아(Sophia)'입니다. 핸슨 로보틱스(Hanson Robotics)가 만든 소피아는 한때 전 지구적으로 사람들의 관심을 받았습니다. 미디어는 앞다퉈 소피아를 소개했습니다. 엄청난 인기 덕분에 소피아는 UN 행사에서 연설을 하기도 했습니다. 60여 개의 감정 상태를 나타내는 다양한 표정을 짓고, 자연스럽게 사람과 상호작용하며 대화하는 모습이 많은 사람들을 놀라게 했죠. 특히 미국 NBC 방송의 인기 토크쇼 '더 투나잇 쇼'에 출연한 소피아는 진행자 지미 펄론과 가위바위보를 해서 이깁니다. 그러고 나서 "앞으로 인간을 지배할 생각인데 이게 그 시작이 될 것 같아요."라고 섬뜩한 농담을 합니다.

 

▲ 사진 : 미국 NBC 방송의 인기 토크쇼 '더 투나잇 쇼'에 출연한 소피아가 진행자 지미 펄론과 가위바위보를 하고 있습니다.

소피아가 이겼네요. 짜고 친 고스톱일까요?

 

소피아에 열광한 사람들의 기대와 달리, 소피아의 대화 능력이 과장됐다는 전문가들의 지적은 설득력이 있습니다. 소피아에 장착된 인공지능의 수준이 고작 챗봇 정도라는 겁니다. 소피아는 사람처럼 제약 없이 대화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몇몇 질문에 대답하고 날씨 같은 일부 주제에 대해서만 간단한 대화가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AI 4대 천왕 중 한 명으로 꼽히는 얀 르쿤 뉴욕대 교수는 소피아의 능력을 부풀리는 미디어를 비판했습니다. 또한 "소피아는 감정도 의견도 없으며 자신이 뭘 말하는지에 대해 이해하지도 못할뿐더러 꼭두각시에 불과하다"라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소피아가 겉모습만 인간과 유사할 뿐, 인간의 지적 능력에는 한참 미치지 못한다는 의견입니다. 결국 소피아의 제작사 핸슨 로보틱스도 소피아가 인간과 비슷한 지능을 가진 것은 아니라고 인정했습니다.

 

▲ 사진 :  오드리 헵번을 모델로 했다는 소피아. 글쎄요, 닮았나요?

 

비록 현재 소피아와 같은 휴머노이드의 지적 능력은 인간에 비할 바가 못 되지만 앞으로 기술이 더 발전한다면 <블레이드 러너>의 Replicant처럼 복제인간에 가까운 휴머노이드가 탄생할 수도 있습니다. 그런 시기가 온다면, 인간은 그들과 어떤 방식으로 공존해야 할까요?  

<블레이드 러너>에서 인간은 Replicant를 인간의 도구 중 하나로 여깁니다. 도구는 잘 활용하면 유익하지만 위험을 초래하기도 합니다. 인간보다 신체적으로 강하고 민첩하며 지능이 유사한 Replicant도 극 중 데커드의 말처럼 "유용하거나 위험"합니다. Replicant는 인격체가 아니라 도구에 불과하므로 'Off-world'라는 우주 개척지에서 인간에게 반란을 일으킨 Replicant처럼 인간에게 위협이 된다면 제거되어야 합니다. 

그런데 앞서 말씀드렸듯이 Replicant가 사랑의 감정을 표현할 수도 있는 존재라면, 과연 위험 요소 때문에 이들을 제거하는 것만이 해답일까요? 오히려 잘 다독인다면 복제인간도 갱생할 수 있지 않을까요? 심지어 복제인간과 인간이 사랑에 빠질 수도 있지 않을까요? 질문이 꼬리에 꼬리를 뭅니다.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기획 및 글 | 사업기획팀 김태혁

Tech in Cinema | 마션(The Martian, 2015)

정보/Tech in Cinema 2019.04.10 14:56




영화 <마션(The Martian, 2015)>

 

인류 독존(獨存)을 노래하는 희망 찬가

  

 ‘테크 인 시네마(Tech in Cinema)’가 소개할 네 번째 영화는 리들리 스콧 감독의 <마션(The Martian, 2015)>입니다. 

 태양계에서 지구와 가장 비슷한 환경을 가지고 있어 생명체가 존재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 알려진 이후로 화성은 늘 인간의 상상력을 자극했습니다. 많은 SF소설과 SF영화가 화성이나 화성인을 다양한 방식으로 묘사하고, 지구의 현실을 에둘러 표현하기 위해 화성(인)을 활용하기도 했습니다. 영화 <마션>이 화성(인)을 다루는 방식은 이전의 픽션들과는 사뭇 달라서 흥미롭습니다.

 

 

#1. 화성인이 된 지구인 

 이 영화의 제목 '마션'은 영단어 'Martian'을 소리 나는 대로 한글 표기한 것으로 '화성인', '화성의, 화성에서 온'이라는 뜻입니다. '마션'은 짧은 2음절 단어지만, 영화를 보고 나서 제목을 곱씹어보니 의미심장하게 다가옵니다. 하기야 어느 누가 영화 제목을 대충 지을까요? 영화 포스터의 스틸 이미지와 함께 박히는 제목은 하나의 영화를 위한 초상화나 다름없습니다.

 

 

 각설하고, 팀 버튼 감독의 <화성 침공(Mars Attacks!, 1996)>에 등장하는 화성 출신 외계인처럼, 그동안 많은 SF영화에서 화성은 지구의 인간처럼 고등한 지적 생명체가 존재하는 행성으로 묘사되었습니다. 화성인들은 주로 지구를 침략하는 외부의 적으로 등장했죠. 즉, 영화 <마션>이 나오기 전까지 '마션(martian)'이라는 단어가 지칭하는 '화성인'의 실체는 인간이 아니었습니다. 영화 <마션>은 여태껏 굳어져 있었던 '화성인 = 외계인'의 등식을 부정하는 영화입니다. '화성인'도 지구의 인간인 것입니다. 그 최초의 화성인이 바로 마크 와트니(맷 데이먼)입니다. 화성인은 미래의 인류가 됩니다. 

 

 

 이처럼 영화 <마션>은 우리가 가지고 있었던 화성인에 대한 통념을 전복하는 데서 출발합니다. 영화 <마션>의 이야기 밑바닥에는 닐 암스트롱이 달에 인류의 첫 발을 내디뎠듯, 언젠가 인류가 화성 탐사에도 성공해 어쩌면 화성에 정착할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이 깔려 있습니다. 극 중에서 마크 와트니가 기록용 카메라에 대고 유머스럽게 내뱉는 "In your face, Neil Armstrong(닐 암스트롱, 제가 당신보다 낫다니까요.)"라는 대사는 그래서 의미심장합니다. '인류가 힘을 합치면 못할 것이 없다'라고 웅변하는 영화 <마션>은 그야말로 이 광활한 우주에서 인류 독존(獨存)을 노래하는 희망 찬가입니다.

 

 

 <마션>도 어디까지나 주인공의 해피 엔딩이 예약된 '할리우드 블록버스터'의 범주에 포함되는 영화입니다. 그러니 우리는 ‘마크 와트니가 온갖 우여곡절 끝에 결국 지구로 생환하는 데 성공한다'는 뻔한 결말을 다 알면서도, 짐짓 모른 체하며, 영화를 보는 셈이죠.

 

 

 누구나 예측할 수 있는 결말을 가진 영화라면, 그 결말에 당도하는 여정의 중요성은 더더욱 커집니다. 과정의 지루함을 없애고, 관객의 집중을 이끌어 내기 위해 리들리 스콧 감독이 채택한 전략은 화성에 홀로 남은 마크 와트니의 독무대를 한껏 북돋아 주는 것입니다. 식물학자인 마크는 화성인(!) 최초로 경작에 성공, 감자를 수확해 먹으며 생명을 유지합니다. 극한 상황에서도 유머 감각을 잃지 않는 마크의 긍정 에너지는 허허한 화성의 사막을 가득 채우고, 우주 공간을 통과해 지구까지 전파됩니다. 영민하게 활용되는 다양한 카메라 앵글은 고독한 화성 생존기를 써내려 가는 마크의 바로 곁에 있는 듯한 느낌을 관객에게 전해줍니다.

 

 

#2. <그래비티(2013)>, <인터스텔라(2014)>, 그리고 <마션(2015)>

 

 

 영화 <마션>을 본 후, 같은 SF 장르인 데다 결말까지 비슷한 <그래비티>와 <인터스텔라>가 떠오르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세 영화 모두 한 줄로 요약하자면 ‘우주로 나간 인간이 죽을 고비를 넘겨가며 다시 지구로 귀환하는 이야기’입니다. 물론 세 영화의 서브플롯, 형식미, 메시지는 각기 다릅니다. <그래비티>는 개인의 실존을, <인터스텔라>는 가족의 생존을, <마션>은 인류의 독존을, 우주에 던져 놓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다시 말해, <그래비티>는 인간의 근원적 고독을, <인터스텔라>는 뿌리 깊은 인간의 고독감을 경감시켜주는 가족의 소중함을, 그리고 <마션>은 절대 고독마저 우주의 먼지로 만들어버리는 인류애의 위대함을 보여줍니다. 세 영화는 우주여행을 가능하게 하는 최첨단 미래 기술 못지않게 인간의 본질을 탐구한 것입니다. 때로 방향을 잃고 헤매더라도 기술과 영화가 가리켜야 할 북극점은 결국 사람이니까요.     





기획 및 글 | 사업기획팀 김태혁